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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렐 SACD 스탠다드 SACD 플레이어

하드웨어리뷰

by hifinet 2005. 6. 18.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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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진

국내 시장에서 독보적인 멀티 채널 SACD 플레이어로 인기였던 크렐 SACD 스탠다드가 제조원의 트랜스포트 수급 문제로 한 동안 볼 수 없었다가 다시 수입되었다. 아래 내용은 2003년 12월에 작성된 SACD 스탠다드에 대한 추가 리포트이다. 시간이 흐르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당시와 달라지지 않았다. 이전 리포트에 비해 추가된 부분에는 문단 뒤에 “*” 표시를 했다.


트랜스포트 : Drawer Loading, Linear Drive 2 레이저 어셈블리, Isolated Mechanism
주파수 특성 : 20Hz∼20kHz,+0dB/-0.5dB
SN비 : 105dB(A-Weighted)
왜곡률(THD) : 20Hz∼20kHz, -82dB
출력 레벨 : 4V(밸런스), 2V(싱글 엔드)
아날로그 오디오 출력 L/R 밸런스(XLR), 6ch 싱글 엔드(RCA)
디지털 오디오 출력 : S/PDIF 동축(RCA), TOS LINK각 1계통
리모트 컨트롤 기능 : 적외선 무선 (프론트/리어 교체 가능), 12VDC 트리거 입/출력1계통, RS-232 리모트 단자
소비 전력 50W (스탠바이시 35W)
치수 : W439 x H145 x D419(mm)
중량 : 11.4kg

서론
최근까지 SACD 재생 장치는 소니, 필립스, 마란츠 같은 대형 가전 업체가 독주하던 분야였다. 하지만 하이엔드 오디오 제조 업체들이 SACD에 대해 일부러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돌이켜 보건대 CD에서도 이런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CD란 포맷이 처음 개발되고 나서 수 년간은 필립스나 소니 제품이 최고급기로 군림했다. 그리고 야마하, 데논, 파이오니아 등도 저마다 최고 기술을 적용했다고 주장하는 고급 CD 플레이어를 출시했다.

시간이 다소 흐르고 CD 포맷이 자리를 굳힌 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메리디언, 크렐, 마크레빈슨, 와디아, 스펙트럴, 소닉 프런티어즈 등에서 분리형 디지털 오디오 제품을 내놓고 음질 면에서도 기존 가전 업체들을 앞서가기 시작한다. 음악과 감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이들의 CD 플레이어는 애호가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선반에 올려 있던 일본 제품들을 밀어낸다. 아마도 이 것이 나중에 다시 대형 가전 업체에 의해 SACD라는 포맷이 등장하게 된 한 가지 원인일 것이다.

새로운 제품 분야에 전문 오디오 업체들이 늦게 시장에 합류하는 이런 흐름은 SACD에서도 똑 같이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엔 하이엔드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제품 개발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 하이엔드 급 제품이 출시되려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시장이 성숙되어야 한다는 점 등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다만 DVD의 경우 원래 대중적인 포맷으로 음질이나 화질 면에서 상당히 타협되어 있는데다가, 음질 면에서 거의 AV 리시버나 프로세서의 디코더에 기대고 있다는 점, 영상 면에서 HD라는 훨씬 우수한 포맷이 존재한다는 점 등의 이유로 하이엔드 제조 업체의 진입이 훨씬 더 차단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크렐이 2003년에 출시한 SACD Standard 모델의 의의는 크다. 이 제품을 계기로 하이엔드 오디오 업체의 SACD 플레이어 출시가 크게 활성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소니의 SCD-1는 물론이고 클라세의 2채널 하이엔드 플레이어가 나온 적은 있지만, 실제로는 크렐의 SACD Standard가 하이엔드 제조 업체에서 출시한 본격적인 고급 SACD 플레이어의 첫 번째 예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Standard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붙었지만, 가격이나 여러 모로 볼 때 크렐의 라인업 내에서는 하위 기종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은색의 섀시는 물론이고, 전면의 디자인도 HTS, TAS 쇼케이스 등 크렐의 홈 시어터 라인업과 일치된다. 물론 앰프에서도 멀티 채널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홈 시어터 라인업과 매치되도록 만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Standard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기존 시장에 나와있는 SACD 플레이어보다 우수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품 소개


SACD STANDARD SACD player

디자인은 크렐의 고급 스테레오 기기와 달리 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디스플레이 창 아래에 프런트 로딩의 트레이가 있고, 작은 버튼이 양쪽에 다수 늘어서 있다. 후면에는 6채널의 아날로그 출력(RCA)과 2채널의 밸런스드 출력(XLR), 디지털 출력으로는 동축과 토스 링크가 보인다. 물론 SACD의 DSD 출력은 제공하지 않는다. 아직까지 SACD의 DSD 디코딩은 제조 업체나 소비자들에게 커다란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 고급 AV 리시버의 경우에는 퓨어 오디오 모드 등을 통해 아날로그 입력 시의 음질을 향상시키고 있는데다가, 디지털 전송을 통한 음질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필자도 여러 가닥의 아날로그 케이블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I.LINK 등에 많은 기대를 했지만, 현재까지 디지털 방식을 채택한 기기에서 음질에서 더 우수하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고 있다. 옆에 있는 것은 12V 트리거, IR 센서, RS-232C 포트 등이다.

제품의 기술적인 내용은 국내 수입원인 royco.co.kr 홈페이지에 대단히 자세하게 나와 있으므로 이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여기서는 간략하게 중요한 몇 가지 부분만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우선 섀시에 이중 구조(chassis-within-a-chassis)를 채택하여 진동 억제에 많은 신경을 썼다. 그 결과 디스크의 회전을 안정화하고, 결과적으로 지터를 감소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SACD의 규격은 CD보다 많은 부분이 향상되었지만 음질 향상을 위한 접근 방법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내부 메커니즘으로는 SACD와 CD 픽업이 완전히 구분되는 필립스제를 사용했다. DAC로는 버브라운의 24 bit/192kHz 사양인 PCM1738 칩을 3개 사용했는데, 이 칩은 DSD와 멀티 비트 신호를 모두 처리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증폭부는 디스크리트 구성이며, 한편 전원부는 토로이달 트랜스에서 DAC와 아날로그 출력단이 서로 별도의 탭을 갖도록 분리되었다.

스테레오파일의 평론가인 Michael Fremer에 따르면 SACD Standard의 출력단이 KPS-28C와 KCT 프리앰프에 사용된 회로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한다. 이 회로는 대역폭이 1.5MHz(-2dB)에 달할 정도로 넓은 데다가, 케이블의 커패시턴스 영향도 받지 않도록 만들어졌다.

한 가지 흥미로운 기능은 내장된 디지털 필터의 슬로프를 필터 1~4까지 4가지(180kHz, 75kHz, 80kHz, 90kHz / -3dB)로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터에 따라 트랜지언트의 특성이 달라지므로 들어보고 좋은 쪽으로 선택하면 된다. 예전에 dCS의 딜리어스나 엘가 플러스에도 이런 기능이 부여된 적이 있었지만, 여기선 게인도 CD 표준 출력에 비해 +0.5~5.5dB까지 변화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내장 필터 조절 장치는 전면 좌측 하단에 네 개의 버튼으로 위치하고 있다. SACD에서는 4가지 필터를 모두 선택할 수 있지만, CD에서는 1,2번만 선택이 가능하다. 3번에서는 출력이 커지기 때문에 마치 볼륨을 올린 것처럼 음량이 차이가 난다. 그러나 3번을 제외한 필터에 따른 소리 차이는 굉장히 적어서 구분하기 쉽지 않다. 과거 dCS의 딜리어스 DA 컨버터에서도 4가지 필터를 제공했는데, 그 때보다도 훨씬 작은 차이다.*

재 시청에서 SACD 스탠다드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SACD 플레이어인 만큼 분명히 SACD만 재생 가능해야 할 듯 싶지만, 필립스의 SACD1000 모델을 기반으로 만든 제품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DVD의 음성 부분까지 재생이 가능하다. DVD를 넣으면 DVD라고 디스플레이에 표시가 되고, 메뉴 화면을 볼 수는 없지만, 플레이 버튼이나 트랙 버튼을 눌러서 원하는 곡을 재생 가능하다. 디스플레이에 CD라고 표시되기 때문에 PCM 트랙을 재생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DVD-V 디스크 중에서는 에릭 클랩튼의 원 모어 카와 로스트로포비치의 첼로 협주곡 등을 재생할 수 있었다. CD와 달리 DVD-V 디스크는 대개 음질이 썩 좋지 않지만, SACD 스탠다드에선 그런대로 들을 만한 소리가 재생된다. 하지만 노라 존스의 어틀랜타 라이브 실황 DVD는 돌비 디지털 트랙만 담고 있으므로, 스피커에서 굉음을 낼 뿐 재생하지 못한다. 물론 SACD 스탠다드에는 비디오 출력이 없기 때문에 화면을 볼 수도 없다. AV 감상에 맞는 용도의 제품으로는 DVD 스탠다드 모델이 준비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리모트 컨트롤은 TAS와 쇼케이스에서 익숙해진 형태로 카드처럼 얇게 만들어져 있으며, 한 손에 쥐어질 만큼 작은데다가 또 가볍기까지 하다. 다만, 기능 버튼이 멤브레인 타입이라서 조작감이 썩 좋진 않다. 본체의 버튼도 역시 조작감이 좋은 편은 아닌데다가, 디스크 동작 시까지의 시간도 다른 플레이어에 비해서 다소 많이 걸리는 편이다.

구동음이 다소 큰 편인데, 귀에 거슬리지 않는 스르륵~하는 낮은 소리로 들린다. 필자는 왼쪽 손이 바로 닿는 위치에 크렐 SACD 스탠다드를 두고 음반 교환 등을 해가며 시청했는데, 분명히 작은 소리는 아니지만, 실제 시청 시에 귀에는 거의 거슬리지 않았다. 전원을 오랫동안 켜놓으면 본체에는 미지근한 열이 발생된다*

시청평

시청기기로는 크렐의 HTS7.1 프로세서, TAS 5채널 파워앰프, B&W 시그너처 805와 HTM2(센터), Epos M15(리어) 프로세서를 사용했다. 인터커넥트로는 후루카와와 모가미, 스피커 케이블로는 카나레를 사용했다. 소니나 필립스의 보급형 기기와 달리 SACD Standard에는 베이스 매니지먼트 기능이 없다. 따라서 서브우퍼를 사용할 수 없는 소형 스피커보다는 풀 레인지의 스피커를 5.0채널로 연결해주는 것이 좋다. 나중에 하이파이넷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B&W 노틸러스 802 스피커를 통해 SACD 재생 실력을 들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음색에선 시그너처가 월등했지만, 밸런스나 스케일감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하이파이넷 시청실에서는 먼저 2채널 CD의 재생 성능을 dCS 엘가와 비교하여 먼저 들어보고 나중에 SACD 2채널과 멀티 채널 디스크의 성능을 확인했다.
이번에 이루어진 추가 시청에는 BAT의 VK-51SE 프리앰프와 VK-75SE 파워앰프, 역시 틸의 CS2.4 스피커를 사용해서 2채널 시청에만 국한했다*

감상
기본적으로 크렐의 SACD 스탠다드는 음색, 밸런스, 사운드스테이지 측면에서 크렐의 최신 KAV 라인업 제품들과 일치된 특성을 보여준다. 나중에 노정현 필자님이 리뷰를 올리시겠지만, 최근에 들어본 400Xi 인티앰프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필자는 예전 크렐의 고급 CD 플레이어가 들려주던 화려하고 진한 음색을 기억하고 있는데, SACD 스탠다드에서는 시원스럽고 산뜻한 느낌이 강하다. 마크레빈슨이나 와디아와 달리 SACD 스탠다드는 언제나 밝고 시원스러운 음색을 지니고 있으며, 재생하는 음악도 그런 쪽이 어울린다.

하이모비츠가 연주한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DG)이 바로 그런 예다. 만일 예전의 크렐 CD 플레이어였다면, 이 음악의 단아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진지하고 묵직한 느낌으로 재생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SACD 스탠다드가 들려주는 제 3악장에선 첼로라는 듬직한 악기가 곡에 따라서 얼마나 경쾌하게 춤출 수 있는 지 확인할 수 있다. 파비오 비온디가 연주하는 비발디의 화성의 영감(Virgin)을 들어보면 dCS 엘가에 비해서도 바이올린의 소리 끝이 잘 뻗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크 음악의 생기 있는 분위기가 보다 잘 살아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보급형 CD 플레이어처럼 아주 밝은 소리를 날리는 가벼운 밸런스를 연상해선 안 된다. 제품의 규모에서 연상되듯이 모든 소리 하나하나에 힘이 붙어 있으며, 현을 지긋이 누르는 듯한 힘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말러의 No.1번 교향곡 4악장을 들어보면 한 마디로 스피커의 우퍼가 제대로 걸린 듯한 느낌이 든다. 저음이 견고하게 뒷받침 된 상태에서 대음량을 터뜨려내는 능력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필자가 보기엔 SACD 스탠다드의 관현악 재생에 대한 대응력은 비슷한 가격대은 물론이고, 또 그보다 비싼 소스 기기와 비교해도 돋보이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사운드 스테이지의 폭이 대단히 넓어서 실제 오케스트라에 가까운 밸런스를 만들어낸다. 또 팀파니나 큰 북처럼 리듬을 새겨나가는 타악기의 트랜지언트를 분명하게 재생해 낸다. SACD Standard의 장점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넓은 시청 공간과 중량급의 파워앰프가 필요하겠지만 제대로 구현되었을 때의 매력은 대단했다. 예전에 필자가 기억하는 와디아의 일체형 CD 플레이어들도 저음의 박력에서는 대단했지만, 사운드스테이지의 재생에서 다소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SACD Standard는 스피커 사이에서 약간 뒤쪽으로 소리를 재생해내며, 귀에 부담스럽거나 필요 이상으로 멀게 들리는 일 모두 없다. 

역시 산뜻한 분위기를 지닌 음반인 실비아 멕네어의 Sure Thing(Philips)에서는 그녀의 목소리 속에 배어나오는 매끄러운 윤기가 귀에 매력적으로 들려온다. 반주 피아노의 여운 역시 많거나 적지 않고 보컬을 가볍게 뒷받침하는 정도로 아주 적절한 울림을 지니고 있다. SACD Standard를 들으면서 가장 많이 떠오르는 단어가 중립적이다, 잘 다듬어졌다는 것인데, 하여튼 소리의 특이성향이 대단히 적은 것은 매칭이나 음악 장르에 대한 대응성에서 큰 장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지적해야 될 것이 자연스러운 특성을 지녔다고 이야기하는 기기에서 오히려 음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SACD Standard의 경우엔 듣기에 즐거울 뿐 아니라 음악에도 깊이 잠길 수 있으니 더 바랄 나위가 없을 듯 하다.

물론 이 제품의 음색은 곱고 부드럽기로 이름 난 메리디언이나 소닉 프론티어즈의 고급 분리형 제품에까지 비교할 수는 없다. 밝고 산뜻한 소리긴 한데, 튜브 앰프들이 그렇듯이 귀가 녹아버릴 만큼 달콤한 소리를 내주진 않는 것이다. 음색만 놓고 이야기하면 에어의 D-1x쪽에 가까운데, 그보다는 좀 더 두텁고 나긋함도 있다. 필자의 취향에는 SACD 스탠다드의 음질이 위에 나열한 제품들보다는 더 실제 소리에 가깝다고 느껴지나, 경우에 따라서는 고역을 달콤하게 롤-오프시키는 케이블로 보완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크렐에선 SACD 스탠다드가 인터커넥트 케이블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카다스, XLO 리미티드 에디션 등이 좋은 매칭이 될 것이다. 재즈나 팝에 대한 대응 능력까지 고려할 경우 이들보다 크렐이 더욱 중용적이고 중립적인 기기임에 분명하다. SACD가 들려주는 재즈나 팝 음악은 최근 등장한 디지털 기기 중 최고라 꼽을 수 있는 메리디언 G08 CD 플레이어에 비해 더 플랫한 밸런스, 자연스럽고 안정된 음장감을 들려준다. SACD 스탠다드쪽이 열기가 조금 적어진 차분한 경향이지만, 저역의 단단함이나 집중력, 중럄감에서 보다 앞선다. 제니퍼 원스의 헌터는 격정적인 메리디언에 비하면 훨씬 여유롭고 편안하게 들린다. 

다음으론 SACD 재생 차례인데, 음색이라든지, 밸런스, 사운드스테이지 등 기본적인 느낌은 CD 감상에서와 유사한 편이다. 다만 포맷의 우수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몇 가지 부분에서는 SACD의 우수한 측면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먼저 2채널 트랙으로 레베카 피전의 Retrospective(Chesky)을 들어봤다. 여기엔 CD 시절에 애호가들이 즐겨 듣기로 유명한 Spanihsh Harlem이 담겨져 있는데, 워낙에 우수한 시스템에서 수도 없이 많이 들어봤던 음반이라 웬만한 SACD 플레이어에서는 아주 인상적인 느낌을 받지 못했다(마찬가지로 데이브 브루벡의 Take five에서도 어설픈 SACD보다는 차라리 하이엔드 CD 플레이어, 그리고 같은 SACD 플레이어라면 멀티 채널 서라운드보다도 2채널 스테레오 트랙이 나은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에는 이런 음반에 대해 원래 DSD/멀티채널로 녹음된 음반이 아니기 때문에 SACD 플레이어에서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크렐의 SACD 스탠다드는 아주 풍부한 고음의 하모닉스와 자연스러운 공간감을 제공해준다. 레베카 피전의 보컬은 인공적인 윤기나 반짝임 대신에 차분하면서도 부드럽게 들려온다. 화려하고 곱고 나긋한 음색을 지닌 일부 CD 플레이어보다는 덜 매력적일 지 모르지만, 대역 밸런스의 안정감이나 사운드 스테이지의 견고함에서는 크렐이 분명 한 수 위였다. 울림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음량을 올리더라도 세부적인 소리까지 묻힘 없이 들리고, 부밍도 적어진 것처럼 들린다.

CD와 SACD의 차이점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들도 많은데, SACD가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공간감과 컴프레션이 적은 미드레인지, 순한 질감이라고 생각한다. DSD 자체의 특성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수 십여 장 이상을 감상해본 결과 확실한 차이점을 느꼈다. 그래서 오디오 입문자들이 원할 것 같은 약간의 과장이 가해져야 가능한 비현실적인 해상도나 과장된 음장감, 돌처럼 딱딱하고 무거운 저음 등은 결코 SACD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원하고 SACD 플레이어를 구입하면 실망하기 쉽다. 게다가 SACD라는 새로운 포맷의 장점을 잘 듣기 위해서는 앰프나 스피커에서도 그 만한 투자가 필요하다.*

최근 출시되는 SACD 음반 중에서 관현악곡으로는 유니버설 뮤직 그룹의 소속 지휘자인 게르기예프의 음반이 비교적 많다. 게르기예프가 지휘한 쇼스타코비치 제 5번 교향곡의 1번을 감상해본 결과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오케스트라의 저음 악기들을 대단히 충실하게 재생해내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첼로와 베이스는 대단히 두텁게 음악의 바닥을 채워내어 풍성한 느낌이 든다. 또 트럼본과 튜브의 묵직한 울림은 다른 소스 기기에서는 전혀 느껴보지 못했을 만큼 당당하게 울려 퍼져 공간을 압도한다. 저절로 볼륨을 올려보는데 전혀 자극적이지 않고 보다 실연에 가까운 큰 소리로 변해 간다*

멀티 채널로 들어본 게르기예프의 전람회의 그림에서는 매스마켓 제품에서는 꿈도 못 꿀 강력한 다이내믹스와 파워를 들려줬다. 마지막 악장인 키예프의 성문에서는 튜바나 호른같은 중량급 금관악기들의 밀어붙이는 듯한 중압감이 제대로 재생되었다. 큰 북의 어택은 바닥을 두드릴 만큼 견고하고 묵직했다. 아까 관현악 CD 음반 재생에 대해 칭찬하긴 했어도 멀티 채널 SACD 재생에서 좌우로 주욱 펼쳐지는 음장감은 일반적인 CD와는 아예 차원이 틀렸다. 이런 스케일 큰 사운드를 국내의 일반 가정 환경에서 시청할 수 있는가는 논외로 하고, 실제 연주회장의 박력에 근접하는 체험 자체가 대단히 즐거운 일이었음을 적어둔다. 

결론
크렐 SACD Standard를 살펴볼 때는 두 가지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 우선 이 가격대의 꽤 우수한 CD 플레이어란 점, 두 번째로 하이엔드 오디오 업체가 만든 성공적인 멀티채널 SACD 플레이어라는 점이다. 가격은 아마 500만원대에서 형성될 것 같은데, SACD 멀티 채널 재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가격대의 CD 플레이어와 비교하더라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제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운드의 규모감이나 저음의 중량감에서 과연 크렐의 제품답다. 다만, 음색, 밸런스, 음장 등에서 아주 중립적인 재생을 하기 때문에, 귀를 확 잡아끄는 매력은 다소 부족한 편이다. 반대로 매칭이라든지 시스템 운용에서는 대단히 자유도가 높다는 장점도 있다. 아직까지 2채널 CD 음반의 재생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이에 집중하려는 애호가들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SACD Standard는 2채널 CD 재생 성능만으로도 충분히 선택할 가치가 있고 이에 우수한 멀티 채널 재생 기능을 더한 제품으로 강력히 추천한다.

예전 리뷰 내용을 다시 읽어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SACD 스탠다드는 고급의 멀티채널 SACD 플레이어로는 국내에서 구입할 수 있는 유일한 정식 수입품 중 하나다. 일본 업체 제품으로는 에소테릭 X-01이 있지만, 가격 대가 완전히 다르다. 국내에 소개된 소니나 마란츠의 보급형 멀티채널 제품은 본격적인 오디오파일 제품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얼마 전 하이파이넷 필자들끼리 모여서 크렐의 SACD 스탠다드와 EMM LAB, 마란츠, 소니의 SACD 플레이어 4개 기종을 2채널 성능만으로 테스트한 적이 있다. 또 비교를 위해 에이프릴 뮤직의 CDA320을 함께 비교해 보기도 했다. 당시 시스템은 틸 CS2.4, 에어V6 멀티 채널 파워앰프, 할크로 DM10 프리앰프였는데, 이는 음색이 조금 차분하고 톤이 가라 앉은 소니와 크렐 제품이 덜 돋보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집에서 같은 스피커와 BAT의 프리, 파워앰프로 다시 테스트해 본 결과 마란츠 못지 않게 크렐은 여전히 톱 레벨의 인상적인 소스기기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틸CS2.4의 우퍼를 힘껏 두들겨 내는 힘찬 파워는 이전 디지털 AV쇼에서 B&802를 구동하던 때를 상기시켰다. 집에서 관현악 곡을 감상하면서 이처럼 시원스러운 느낌을 받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에 비해 마란츠 SA-11S1의 경우는 아주 초점이 또렷하고 세부적인 디테일이 많은 정교한 재생 특성을 보여준다. 크렐과 마란츠는 각기 멀티 채널 플레이어와 2채널 플레이어라는 다른 영역에 군림하기 때문에 일대일로는 비교하기 어렵다. 여전히 자신의 시청 기기에 걸 맞는 제품을 선택하는 요령이 필요한 상황인 듯 하다. 아래 내용은 크렐 SACD 스탠다드에 대한 문한주님의 시청 리포트이다*


크렐 SACD 스탠다드 플레이어는 한동안 메카니즘 조달 문제로 인해서 공급이 불투명했다. 그 때문에 크렐 홈페이지에도 제품 소개가 삭제되었었고 2004년 10월호 스테레오파일 추천기기 목록에서도 사라졌었다. 다행히 최근에 메카니즘 조달 문제가 해결되면서 국내에 재수입 되었다.

국내 실정을 감안해보면, 크렐 SACD 스탠다드는 2채널 SACD재생 면에서 경쟁력이 있는 제품이기도 하지만, 멀티채널 SACD 재생에서는 가격을 떠나 절대적으로 독보적인 존재가 된다. 왜냐하면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된 멀티채널 SACD 전용기로는 가격순으로 소니 SCD-XB780, SCD-XA3000ES, 마란츠 SA-17S1, 크렐 SACD 스탠다드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EMM LAB은 보따리식으로 수입되고 있어서 정식 수입제품이라고 불러주기 어렵다.)

거기다가 크렐 SACD 스탠다드의 가치를 더욱 빛내주는 것은 훌륭한 CD재생 능력이다.
미국내에서 비슷한 가격대에 있는 경쟁제품 소니 SCD-XA9000ES에 비하면 크렐 SACD 스탠다드쪽이 보다 레퍼런스에 가까운 CD 재생음을 내준다.
소니는 교정시력보다 한 단계 또는 두 단계 돗수가 높은 안경을 낀 것처럼 또렷하고 핵이 알알이 살아있다는 느낌이고 크렐은 교정시력에 딱 맞거나 아니면 한 단계 돗수를 낮춘듯한 느낌이다. 안경을 써본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교정시력보다 돗수가 높은 안경을 쓰는 게 좋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소니는 근접해서 녹음한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지는 타입이고 크렐은 약간 뒤쪽에 마이크를 두어서 소리가 적당하게 섞여있다고 느껴지게 하는 타입이다. 이런 자연스러운 점이 살아있는 크렐 쪽에 호감이 간다.
그리고 크렐다운 약동감을 중시한 당당한 소리는 오디오로 재현할 수 있는 풀 스케일의 다이나믹과 무게와 절도를 구현하는데 전혀 모자람이 없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넘치지도 않기 때문에 인공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음색이나 색채감의 재현이란 면에서 보자면 마란츠 SA-11S1 SACD플레이어에 비해서 덤덤한 느낌을 받게 된다.

크렐 SACD 스탠다드를 2채널 SACD재생이라는 면에서 살펴보자면, 가격이나 음질, 만듦새나 사용자 편의성 면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일본제 제품에 비해서 나은 점도 있고 아쉬운 점도 있다. 어느 제품도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지는 않으며 우열을 가리는 것도 쉽지 않다. 모두 존경 받을 만한 재생 수준을 갖췄다고 해야겠고 단지 취향과 매칭에 의해서만 상대적으로 선호될 수 있을 따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크렐 SACD 스탠다드의 SACD 재생음의 성격은 위에서 언급했던 CD 재생음과 대동소이하다. 스탠다드라는 이름을 괜히 붙인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음색이 화려하지 않고 차분하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오디오 시스템에서 그런 소스기기를 요구할 때 최대로 성공을 뽑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령 KEF 스피커 사용자라면 소니 SCD-XA9000ES보다는 크렐 SACD 스탠다드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UNI-Q드라이버에서는 소니가 경직된 소리가 강조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반면에 레벨 퍼포머 M-20이나 틸2.4CS 스피커 사용자가 크렐을 선택하면 밋밋하게 느껴지다 못해 음악 듣다가 졸고 있는 일이 많아질 것 같다. 이들 사용자에게는 마란츠 SA-11S1을 매칭하는 편이 좀더 맛있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신에 규모가 큰 음악에서는 연주의 치밀함이나 기백이 전달되지 않는 아쉬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감안하기 바란다. 그런 아쉬움을 용납하기 힘들다거나 가지고 있는 앰프의 소리가 예쁘다면 소니를 선택하는 것도 제법 괜찮을 것 같다. 단지 에포스 M12.2에 국한된 것은 아니고 저역에 대한 무게가 적절하게 재생되지 못하는 북쉘프 스피커를 사용한다면 크렐의 장점을 살릴수 없다. 이럴 경우는 차라리 가격이 저렴한 대체품을 찾는것이 나을 것이다.
이상 매칭에 대한 의견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며 단지 가벼운 마음으로 참고만 하시기 바란다. - 문한주

시청기기

  • SACD 플레이어: 소니 SCD-XA9000ES, 마란츠 SA-11S1*, EMM LABS CDSD 디스크 트랜스포트 + DAC6e 6채널 D/A 컨버터*
  • 앰프 : 핼크로 dm10*, 에어 V-6x*, 마란츠 PM-11S1, 마크레빈슨 383L,
  • 스피커: 틸 2.4CS*, 레벨 퍼포머 M-20, KEF Q 콤팩트, 에포스 M12.2
  • 스피커케이블: 알파코어 괴르츠 MI2, 카나레 4S8G, 트랜스패런트*
  • 인터커넥트: 카나레 GSR-6, 오디오퀘스트 아나콘다*
  • 파워케이블: 오디언스 PowerChord
  • 기타 액세서리:
    - Black Diamond Racing Cone type #3,
    - Black Diamond Racing The Shelf,
    - RPG Korea 어퓨저,
    - 스카이비바 텍스보드 흡음재,
    - 자작 아이솔레이션 받침대,
    - 운영 21-1KA isolation transformer,
    - AudioPrism Quiet Line,
    - Cardas RCA/XLR caps,
    - BluTak
    *장소 및 시청 시스템 협찬: GL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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