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문한주, 박우진
문: 저는 이번에 듣는 게 800D로는 두번째 시스템 조합입니다. 우진님은 다른 시스템으로 더 들어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박: 800D를 처음 들어본 것은 예전 남상욱 필자님이 사운드미러 마스터링 룸에서 노틸러스 801과 비교해서 리뷰하던 때였습니다. 노틸러스 801에 비하면 확실히 저음의 양이 더 많다고 말씀하셨구요. 제 경우엔 깊게 내려가는 저음은 아무래도 15인치 우퍼를 사용한 801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문: 얘기가 나온 김에 잠시 B&W의 스피커 중에서 800D의 위상에 대해서 얘기해 보는 게 어떨까요. 그러다 보면 자연히 각각의 특성과 차이에 대해서 얘기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박 : 원래 이 모델의 원형은 시그너처 800입니다. 하나 시그너처 800은 출시 당시에 B&W의 사실상 최고급 기종이었죠. 타이거 아이의 마감이나 만듦새에서 당대 최고의 스피커들과 겨룰 만한 내용을 갖고 있었습니다. 시그너처 800은 10인치 더블 우퍼 구성으로 캐비닛의 용적을 줄였지만, 별도의 스탠드를 부착하고, 크로스오버를 여기에 내장하는 등 B&W가 스피커에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구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더 큰 801에 비해서 무게도 더 나갑니다.
유니트나 크로스오버 등은 그대로 유지하고, 마감만 낮춰서 노틸러스 800 시리즈의 연장선에서 만들어진 스피커가 노틸러스 800이었구요. 음질에 비해 저렴해진 가격으로 역시 호평을 받았습니다만, 그래도 801에 비해 가격이 많이 높았습니다. 새로운 800 시리즈를 계획하면서도 800D는 톱 모델의 자리를 당연하다는 듯이 유지 합니다만, 같은 다이아몬드 트위터를 탑재한 동생 801D와는 가격 차이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문: 저는 유감스럽게도 801D는 들어보지 못했고 802D밖에 들어보지 못했습니다만 802D는 밸런스가 위쪽으로 올라가 있는 인상이어서 매칭이 수월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반면에 800D는 대역 밸런스가 잘 잡혀져 있어서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박: 저도 801D에 대해서는 마찬가지입니다. 802는 예전 노틸러스 시리즈에서도 서브우퍼와 함께 사용해야 하는 제품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사실 802의 8인치 더블 우퍼라는 구성은 조금 애매하다고 보여집니다. 그런 규격에서 얻어지는 한계점이 802D의 소리에도 나타나는 데요. 유니트 간의 이음새도 상급 기종에 비하면 덜 매끄럽고, 저음의 박력도 부족해서 오히려 중형 스피커에 가깝지요. 스피커의 크기에 비하면 스케일이 작은 소리를 냅니다.
이에 비해 노틸러스 801은 대형 스피커 시스템이다보니 전체적으로 다소 느린 듯하지만, 풍부하고 자연스러운 저음의 구현이 일품이었습니다. 특히 고출력 앰프로 제대로 구동했을 때의 노틸러스 801이 들려주는 오케스트라의 존재감은 최근의 가정용 오디오 시스템으로는 드물게 참으로 당당하게 표현됩니다.
문: 저는 노틸러스 801밖에 들어보지 못했지만 이 제품이라면 프로용 업계에서 신뢰할 수 밖에 없겠다고 바로 느끼게 되더군요. 이번에 다이아몬드 트위터를 탑재한 801D의 소리도 궁금합니다. 전작인 노틸러스 801 스테레오파일 리뷰를 보면 바이앰핑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써놓았더군요. 프로용으로는 믿음직스럽지만 가정용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가 봅니다. 그래서 가정용을 염두에 두고 개발한 게 800D가 아닐까 싶네요.
박 : 800D의 경우에도 EMI의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여러 대가 채택되었습니다. 800D를 울리는 파워앰프로는 클라세 CM400이 바이앰핑으로 사용되었구요.
B&W 800D 스피커가 클라세의 CM400 모노블럭 파워앰프와 함께 설치된 EMI의 애비로드 스튜디오
문: 색상이나 디자인 면에서도 클래식한 계열의 인테리어를 가진 가정에 잘 어우러질 것 같습니다. 모던한 느낌을 주는 스피커 디자인이 필요하다면 윌슨 오디오를 빼놓고 생각해 볼 수 없겠죠.
박: 말씀하신대로 소리보다는 디자인에 대한 선호도가 하이엔드 스피커에도 중요한 선택 요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게다가 800D는 좀 더 다양한 공간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고려된 디자인이라는 장점이 있지요. 별도의 전용 스탠드를 두고, 대형 싱글 우퍼 대신에 보다 작은 더블 우퍼로 구성하여 저음에 대한 통제력을 높였구요.
문: 800D처럼 대형 스피커의 저음이 넓지 않은 공간에서도 엉키지 않다는 점은 흥미로웠습니다. 클래식 곡을 위주로 들으면 좁은 공간이더라도 부밍 고민이 덜한데 그런 점도 감안이 되어야 겠죠? 802D같은 경우는 신형 트위터의 성능에 주목하게 하는데 반해 800D에서는 밸런스가 잘 맞아떨어지면서 고역에 대해서는 신경이 상대적으로 덜 가게 되고 오히려 저역의 품질이 대단히 뛰어나다는 데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좋은 스피커들이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로 저역을 깨끗하게 소리 내주는 제품은 구경할 수 없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 저음이 아주 가볍고 힘 들이지 않게 울려 퍼지지요. 하지만, 너무나 가볍게 울리는 것이 음악적인 매력과는 조금 다르게 된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스테레오 사운드의 베스트 바이 콤포넌트 추천을 보면 대 구경 싱글 우퍼를 탑재한 801D의 매력을 더 높이 사는 필자들도 있어서 흥미롭더군요.
문: 우퍼에 사용된 로하셀이 저역의 노이즈를 많이 줄여준 것 같습니다.
박: 800D의 또 다른 장점은 대형 스피커이면서도 3차원적인 이미징을 구현한다는 점입니다. 더블 우퍼 구성의 대형 스피커로 이렇게 자연스러운 음장감을 들려주는 스피커는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이미징만 놓고 보면 예전의 알루미늄 트위터를 사용한 제품들이 더 또렷한 포커싱을 내주는 것 같은데요. 다이아몬드 트위터는 소재의 존재감이 적어서 그런지, 너무 스무스하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문: 이 제품을 사용하시면서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거나 사용 팁이 있다면 어떤 게 될까요?
박: 민감한 차이도 그대로 내어주는 제품이다 보니 사용자가 공력이 딸려서 조그마한 매칭 미스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영향을 그대로 받는 것 같습니다. 나쁜 소리가 난다면 원인을 스피커 말고 다른 곳에서 찾아볼 것을 권합니다.
문: 요즈음 제가 직결 시스템에 익숙해져서인지 몰라도 스피커에 있는 모든 그릴은 트위터, 미드레인지, 우퍼를 가릴 것 없이 죄다 벗기고 들어야 성이 차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트위터가 높이 달려 있기 때문에 청취자의 귀높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을 때 감쇄되지 않은 고역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GLV 리스닝룸에 있는 소파보다는 조금 앉은 높이가 높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박 : 저도 스피커의 그릴을 전부 벗겨 내고 들었더니, 소리가 훨씬 디테일해진 것 같이 느껴집니다. 앞서 언급한 포커싱도 보다 더 조여진 것 같구요. B&W 스피커를 사용하시는 분들께서는 그릴을 다 벗겨서 사용하는 것도 한 번쯤은 고려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문 : 이번엔 어떤 앰프와 잘 어울릴지에 대한 얘기를 해야겠는데요. 아무래도 임피던스 측정치를 놓고 얘기하는 것이 지도를 놓고 길을 찾아가는 것과 같을 것 같군요. B&W 800D 스피커의 임피던스 측정 결과는 스테레오 사운드 156호에 실려 있습니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잘 살펴보다 보니까 이 측정 결과가 스테레오파일 2005년도 12월호에 실린바 있는 B&W 802D의 임피던스 패턴과 90%이상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스피커 모두 주파수에 따른 임피던스 변동이 현저하게 커서 댐핑 팩터가 큰 트랜지스터 앰프로 드라이브를 전제로 설계되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스테레오사운드에 실린 800D의 임피던스 그래프)
문 : 그래프를 잘 보시면 높은 저역이 시작하는 80Hz부터 중간 중역이 끝나는 640Hz까지의 세 옥타브 구간에서 임피던스가 약 3오옴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네 옥타브 구간(640Hz~10240Hz) 에서의 평균 임피던스는 이보다 훨씬 높습니다. 피크에 도달하는 2.7kHz에서는 무려 20오옴이 넘습니다. 이처럼 스피커가 중저역의 평균 임피던스와 고역의 평균 임피던스 차이가 큰 경우에는 같이 물린 앰프의 소스 임피던스가 큰 경우에-대개의 진공관앰프나 PWM류의 디지털 앰프- 밸런스가 고역쪽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다시 말씀 드려서 댐핑 팩터가 작은 앰프로 드라이브하면 2.7kHz가 소리가 크게 들리게 되어서 밸런스가 바로잡히지 않고 튀는 특성이 생기게 됩니다.
스테레오사운드의 측정치는 로그 스케일을 써서 주파수 대역간의 임피던스 차이가 완만하게 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을 대수 스케일로 변환해 보면 이 그래프와 아주 흡사하거든요...
(스테레오파일에 실린 B&W 802D의 임피던스 그래프)
문 : 어때요? 주파수 대역간에 임피던스 차이가 엄청난 것이 눈에 잘 드러나게 되었지요?
유감스럽게도 스테레오사운드의 B&W 800D 측정치에는 위상각 부분이 표시되지 않아서 어느 대역에서 복합적인 어려움이 있을지 꼭 집어서 예측을 할 수는 없겠습니다. 어쨌든 B&W 800D의 경우는 3오옴 미만의 낮은 임피던스 부분이 나타나고 있어서 임피던스가 4옴에서 성능이 보장되는 앰프를 선택해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8 오옴에서 출력이 4 오옴 에서는 꼭 두 배로 증가되는 구동력이 강한 제품이어야 되겠지요. 아무런 앰프에나 몸을 허락하는 호락호락한 스피커는 아닌 것 같아 보이네요. 그런 면에서 B&W 800D는 바그너 링 오페라에 나오는 아이슬란드의 여왕 브룬힐데가 연상됩니다. 그녀를 얻고싶은 청혼자는 결투를 해서 이겨야 남편의 자격을 갖고 그러지 못하면 결투에서 목숨을 내놓아야 할테니까요.
박 : 네. 굉장히 흥미로운 분석을 해주셨습니다. 역시 만만한 스피커는 아니구요.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400와트의 클라세 M400을 바이앰핑으로 구동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겠네요.
다만, 임피던스에 대해 영향을 잘 받지 않는 그러니까, 수입이 안정된 남편이면 되고, 현금 동원 능력(전류 공급 능력)은 그 다음이라고 생각됩니다. 매칭 앰프에 대해서 아주 까다롭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악명 높은 아포지 리본 스피커라든지, 틸 CS5 같은 스피커처럼 1옴 이하의 극단적인 저 임피던스 특성을 보이지도 않으니까요.
예전부터 B&W 스피커들이 앰프 출력을 많이 요구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이번의 다이아몬드 시리즈의 우퍼는 폼과 같은 대단히 저질량의 재질이라서 쉽게 움직이고, 쉽게 멈춥니다. 따라서 저음의 미묘한 디테일을 재생하는 데 굉장히 많은 기여를 하고 있고요. 특히 앰프에서 적은 출력을 공급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중에 청취 리포트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저음의 자연스러움이라든지, 유연함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테레오사운드의 그래프를 보면, 아랫 쪽에 2차와 3차 하모닉스의 그래프가 있는데요, 다른 스피커들에 비해서 상당히 왜곡이 낮은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어판에는 2, 3차원 왜곡으로 잘못 번역되어 있습니다.